Dilluti0n의 블로그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슬퍼졌다. 해방되기 전 그러니까 박완서가 중학생때까지의 이야기만 해도 150페이지 정도 되는데 스무 살 갓 대학에 진학한 지금 내 이야기를 이정도 적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박완서의 글로 본 그녀의 시골과 도시 언저리의 이야기는 그 정도로 아름다웠다. 물론 추억이란 게 좋고 나쁜 일들만 남고 그 사이의 권태나 고통이란 예쁜 주황색으로 바랜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지만은 이 책은 이런 추억들을 마치 내 기억인 양 그리워할 정도로 잘 전달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매력적인 문장을 꼽으라면 어렵게 고민해야 하는데 이 작품의 매력은 화려한 문체가 아닌 담담하지만 사실적이며 상세한 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작품의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놓고 나서 두루마기 주머니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꺼내 손에 쥐여 주는 것을 잊으신 적이 없었다. 노란 편지봉투에 싼 미라사탕 아니면 잔칫상에서 염치 불구하고 집어넣었음직한 약과나 다식 따위였다.” 라는 문장은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미라사탕과 같은 소재를 적절히 활용하여 생동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작가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만큼 상세하고 커다랗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난 노란 편지봉투에 싸인 미라사탕이 뭔지 잘 모르지만 읽으며 중학교 시절 사회 선생님께서 가지고 다니시던 유가라는 사탕이 떠올랐다. 수업할 때 늘 사용하시던 검정색 스피커 가방에 잔뜩 담아 질문을 맞추면 주시던 흰색 비닐에 싸인 길쭉한 흰색 사탕인데, 주변에서 쉽게 구할수 없어 인기가 많던 게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기억 속 깊숙한 데 잠겨 있는 자그마한 추억들이 끌어올려 지는 게 작품을 읽으며 중간중간에 느낄 수 있었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박완서의 추억이 감미로운 조미료라면 그녀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근대사는 소설의 진국 그 자체였다. 왜 진작 오래 전부터 거실 책장 한가운데에 꼿혀 있던 이 책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 1년 전인가 일본 소설에 빠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나는 상실의 시대로 나온 책을 봤다.) 등을 볼 때 든 생각이 예전 소설, 특히 근대의 그것만큼 그 시절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는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 실격에서 호리키와 같이 다니며 본 30년대의 도쿄라던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의 파란만장한 60년대 대학 생활을 지켜 보는것은 그 자체로 나를 즐겁게 했다. 해서, 최근 위안부 사건이 이슈되기도 해 이런 책이 없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은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 한홍구)> 이나 <반일 종족주의(이영훈 등)> 와는 달리 정치적이지 않은 개인의 시점에서 그 시절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그 실체는 역시 따분하고 정치적인 역사서와는 달랐다. 역사서에서는 언급하지도 않는 부분, 이를테면 관청이나 파출소 앞에선 괜히 안색이 조금 달라지는 평범한 촌부에 지나지 않았던 어머니가 천오백 원짜리 기와집을 사서 반이 조금 넘는 팔백 원을 금융조합에서 융자받을 수 있었다거나, 친일파로 불러 마땅할 총독부의 근무자나 면서기라는게 그저 직장이고 관직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순사를 피해다녀야 했고 전시 자원을 수탈당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설움이오 아픔이겠지만은 내가 알던 것처럼 평범한 이들까지도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나날은 아니었나 보다. 오히려 주인공이 아픔을 느끼게 된 이유는 일제의 강점이 아닌 좌, 우익간 대립과 6.25였다는 것이 내 마음을 슬프게 했다. “따지고 들어가면 공산치하에서 살아 남았다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정리되는 당시 시대상황에서 신념의 종류는 곧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마치 벌레처럼 그것을 뒤집으며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그 경험은 훗날 박완서가 글을 써 증언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도록 만든다. 따지고 보면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 만들어진 사상이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하는 극단적인 시대의 모습은 나에게 그것의 허무함을 깨닫게 하기 충분했다. 이런 아름답지만 잔혹하고 즐겁지만 슬픈 시대에 대한 탐험은 나에게 최근 들어서 최고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