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luti0n의 블로그

90년대 초 전산화 열풍이 불 때 의심을 가지며 어차피 이전에도 다 찾을 수 있는 거 조금 더 빨리 쉽게 찾게 된다고 뭐가 달라지냐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전산화된 지금에 이르러선 ‘조금 더 빨리’ 가 모이고 모여 사회, 문화 영역 전반에 걸쳐 큰 변화와 혁신을 일으켰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LLM 은 기본적으로 그런 기술이다. 구글링해서 실제로 찾으려면 10분이 걸릴 정보를 5초 안에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아얘 이해하지 못하거나 혼자 구글링을 했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정보도 5초 안에 찾아준다. 아얘 이해하지 못했을 정보는 대학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속해서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해야 가능했을 정보다. LLM 은 거기 속하지 않아도 그것이 가능하게 해준다. 수학 문제를 푼다던지, 코딩을 한다던지 하는건 부차적인 효과다. 본질은 굉장히 빠른 검색 기술이라는 데에 있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코딩을 할 때 직접 사고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전에 있던 수학적 쳬계와 그 정리, 알고리즘을 학습하고 실제 문제를 풀 때 해당되는 내용을 머릿속에서 탐색해 끄집어 낼 뿐이다. LLM 은 이 과정을 흉내내는 거지, 아직까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심지어 인식하지조차 못한다. (O1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LLM 이 많은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이유는 현재까지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가 너무 방대해 (특히 컴퓨터과학의 경우) 자신들이 하는 일이 원래 공개된 정보를 찾아 적용하는 일이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리처드 스톨만의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으로 시작된 오픈소스 관행은 이 문제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LLM 이 코딩을 그렇게 잘 하는 이유는, 스스로 코딩하지 않고 인터넷상에 공개된 정보를 쨔집기 하는 것 만으로 원하는 회로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코드가 인터넷에 공개되었기 때문 아닐까? 오픈 소스는 코더의 일자리를 뺏는 대신에 구글과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웹 기술자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이제 그 새로운 일자리마저 요구하지 않거나 더 적게 요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잠시 전화교환수 이야기를 하자.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없어졌다고 여겨지는 전형적 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900년대에 90여 개의 자동교환장치 특허가 등록되었지만, 전화교환수에서 자동교환장치로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20년 부터라는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왜 BELL 전화회사는 전화교환수에게 주는 임금을 절약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그토록 늦게 도입한 걸까?

사실 전화교환수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전화선을 연결하는 일만 했던 게 아니다. 전화가 막 발명되고 전화 가입자 수가 적었던 초기에는 전화를 걸려 해도 상대가 전화에 가입해있지 않아 못 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전화 가입은 소비자들에게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BELL 전화회사는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전화교환수를 ‘고객의 수다에 화답하는 재치 있는 말동무’ 로 포지셔닝하며, 고객과 전화국간 교류를 중심으로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했다. 자동교환장치는 전화교환수를 기술적으로는 대체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지만, 사회적 위치를 대체할 수는 없었고, 그 역할을 축소시키는 데에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자동교환장치와 같은 전자회로를 그것을 물리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기술의 발전은 더욱 빨라졌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체하게 된 속도보다 실제 대체는 훨씬 느렸다. 오히려 컴퓨터가 일자리를 감소시켰다고 여겨지는 주된 요인은 자동장치와 전산화라는 본질적 특성보다 인터넷과 그것이 가져온 지식의 민주화라는 부수적 결과 때문이 크다. 이전에는 출세하는 방법이라는 건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면 접근조차 불가능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공간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발전된 소셜 미디어는 출세 그 자체의 수단으로서 사용되기도 한다. 기존에 대학이나 그와 비슷한 엘리트 계층에 들어갔다면 그 자체로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과 경쟁할 수 있었다면, 인터넷의 발전으로 어떤 커뮤니티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그 이전과 같은 효과를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LLM 의 주된 영향은 인간의 기술적 측면에서의 대체보다는 사회 전반적 변화에 있을 것이라 예측된다. 인터넷이 지식의 민주화를 일으켜냈다면, LLM 은 그걸 습득하는 속도를 민주화 시키지 않을까? 지적 능력에 상관없이 말이다.